전세 재계약 시점이 다가오는데 보증금을 올려달라는 연락을 받으셨다면,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. "이 돈이면 그냥 사는 게 낫지 않나?"
지금 이 고민을 하는 분이 유독 많습니다. 이유가 있습니다.
왜 지금 전세가 어려워졌나
2026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약 2만 9천 가구로, 전년 4만 2천 가구 대비 31% 넘게 줄었습니다. 2021~2023년에 인허가와 착공이 크게 감소한 결과가 3년쯤 시차를 두고 지금 나타나는 것입니다.
여기에 임대 물량이 월세로 전환되는 흐름이 겹쳤습니다.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7% 수준까지 내려와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. 전세 매물 자체가 귀해진 것입니다.
이런 국면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습니다. 공급은 이미 몇 년 전에 결정된 것이고, 착공에서 입주까지 다시 3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입니다. 당분간 이어질 흐름이라는 전제로 판단하시는 편이 현실적입니다.
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겠습니다. 전세가 어렵다는 것이 곧 "매수가 답"이라는 뜻은 아닙니다. 아래 세 가지를 계산해 보고, 숫자가 맞지 않으면 전세를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.
① 전세보증금이 그대로 내 돈은 아닙니다
가장 흔한 착각입니다. 전세보증금 4억이면 자기자금 4억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, 전세대출을 끼고 있다면 그만큼은 내 돈이 아닙니다.
보증금 4억에 전세대출 1억 5천만원을 받고 있다면, 매매로 전환할 때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2억 5천만원입니다. 전세대출은 이사하면서 상환해야 하니까요.
여기서 한 가지 더 빼야 합니다. 이사 비용과 중개보수,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수리비입니다. 최소 수백만원, 넓은 평형이면 천만원 단위까지 나갑니다. 자기자금을 계산할 때 이 여유분을 남겨두지 않으면 잔금 직전에 곤란해집니다.
정리하면 이렇습니다.
실제 동원 가능 자금 = 전세보증금 − 전세대출 잔액 − 이사·부대 비용 여유분
② 대출 한도는 자금이 아니라 소득이 결정합니다
보증금이 넉넉해도 대출이 예상만큼 안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. 한도는 세 가지 기준 중 가장 작은 값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.
LTV — 집값의 몇 퍼센트까지 빌려주는지입니다. 10·15 대책 이후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서, 무주택자 기준 LTV가 70%에서 40%로 축소됐습니다. 10억짜리 집이면 담보만으로는 4억까지입니다.
DSR — 연소득에서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제한합니다. 여기에 스트레스 금리가 더해집니다. 실제 금리가 아니라 "금리가 올랐을 때"를 가정한 금리로 한도를 계산하는 방식이라, 체감 한도가 상당히 줄어듭니다.
총액캡 — 규제지역에서는 집값 구간별로 대출 총액 상한이 있습니다.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이 금액을 넘을 수 없습니다.
여기서 전세난 국면에 특히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습니다. 1주택자가 수도권·규제지역에서 받은 전세대출은 그 이자 상환분이 DSR 계산에 포함됩니다. 기존에는 빠져 있던 항목이라, 전세대출을 끼고 있는 상태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보면 한도가 생각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.
이 세 가지를 사람이 손으로 조합해 자기 한도를 계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. 전세보증금으로 살 수 있는 집 계산기에 보증금과 연소득만 넣으면 이 계산을 대신 해드립니다.
③ 감당할 수 있는 월 상환액인지 봐야 합니다
한도까지 빌릴 수 있다는 것과 빌려야 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.
전세는 목돈이 묶이는 대신 매달 나가는 돈이 없습니다(월세 전환분 제외). 매매는 반대로 매달 원리금이 나갑니다. 이 차이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큽니다.
일반적으로 월 상환액이 세후 소득의 30%를 넘어가면 부담이 체감되기 시작합니다. 40%를 넘으면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을 때 대응 여력이 사라집니다. 계산 결과의 월 상환액을 지금 생활비 구조에 그대로 대입해 보시고,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 먼저 확인하세요.
또 하나 — 금리가 오르면 이 금액도 오릅니다. 변동금리를 선택했다면 현재 상환액이 최대치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.
계산 결과 전세 유지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
세 가지를 계산했더니 매수 가능 금액이 지금 사는 집 시세보다 한참 낮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. 이때 무리해서 외곽으로 옮기는 것이 반드시 나은 선택은 아닙니다.
- 출퇴근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 그 비용은 매달 발생합니다
- 자녀 학교 문제가 있다면 이사 시기 자체가 제약됩니다
- 자금을 1~2년 더 모으면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
전세보증금을 올려주고 2년을 더 사는 것도, 계산 끝에 나온 합리적 결론일 수 있습니다. 이 글의 목적은 매수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출발점을 드리는 것입니다.
정리 — 순서대로 확인하세요
- 실제 동원 가능 자금 = 보증금 − 전세대출 − 부대비용 여유분
- 대출 한도 = LTV·DSR·총액캡 중 최솟값 (전세대출 이자도 DSR에 포함)
- 월 상환액이 세후 소득의 30% 이내인지
- 위 셋을 합쳐 나온 금액으로 갈 수 있는 지역을 실거래가 기준으로 확인
- 그 지역이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인지 판단
1~3번은 전세보증금으로 살 수 있는 집 계산기에서, 4번은 지역 시세 리포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.
본 글은 공개된 규제 기준과 실거래 통계에 관한 일반적 안내이며, 특정 시점의 매수 또는 전세 유지를 권유하지 않습니다. 실제 대출 조건은 금융기관 심사에 따라 달라집니다.